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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땅은 하나님 소유, 초중등 의무교육, 부자 누진세… ‘기독교적 건국 청사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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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순란서 작성일19-08-15 07:2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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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광복 후 첫 주일에 선포장공 김재준 목사가 신문을 읽고 있는 모습. 국민일보DB
“모든 땅은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새 나라의 국토개발은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교육정책 수립이 최우선입니다. 의무교육도 필요합니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위해 누진세를 부담해야죠.”

장공 김재준(1901~1987) 목사가 1945년 8월 19일 기독 청년들에게 선포했던 건국의 구상이다. 당시 김 목사는 조선신학원 원장이었다. 이날은 광복 후 첫 주일이었다. 김 목사는 선린형제회 회원들에게 ‘기독교의 건국이념’을 주제로 새 나라의 청사진을 펼쳤다. 모임은 사실상 예배였다. 같은 해 12월 김 목사는 선린형제회를 모태로 서울 경동교회를 창립했다.

이날 강연은 단행본으로 출판됐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동안 대중에 알려지지 않았던 책을 임희국 장로회신학대 교수가 2017년 경기도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관장 한동인 장로) 서고에서 발견했다. 임 교수는 ‘1945년 8·15광복, 건국의 이정표를 제시한 장로교회 신학자들’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이 내용을 소개했다.

김재준 목사가 1945년 8월 19일 선린형제회 집회에서 선포했던 ‘기독교의 건국이념’ 단행본 표지. 임희국 교수 제공
김 목사가 꿈꿨던 새 나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을 이어받은 민주 공화정 국가를 꿈꿨다. 국토는 하나님의 소유라고 규정했다. 그는 “땅은 하나님의 동산으로 도로 상가 공장 주택 관공서 학교의 배치도를 그리되 산과 들의 아름다움을 자연 그대로 보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풍부한 지하자원은 정부와 민간이 협력 개발해 공업화를 추진하고 국토개발을 국외자본에 맡기지 말고 외국인 토지 소유를 제한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교육정책 수립을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초등학교 6년, 중등학교 4년 의무교육 필요성도 이런 이유에서 제안했다. 일제강점기 국가주의 교육은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학교는 하나님의 통치를 망각한 채 국가 봉공을 위한 부품을 양산하는 공장이었다”면서 “국가주의를 주입하는 교육은 절대 되살아나지 않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정교분리 원칙도 강조했다. 김 목사는 “교회는 신적 기관으로 정부가 교회의 자유와 자치를 침해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교회도 정치에 직접 개입해선 안 된다”며 분명한 선을 그었다.

‘부의 정의로운 분배’도 새 나라의 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부자에게 누진세를 부과하고 대재벌의 세습을 막아야 한다”면서 “부자들이 소작인과 노동자의 교육비와 의료비를 책임질 수 있는 세금정책을 펴라”고 주문했다.

일제강점기의 군대를 기반으로 창군하라고 한 점과 친일 전력자 ‘대사면’을 제안한 건 논란이 있을 수 있는 대목이다. 임 교수는 14일 “값싼 용서가 아니라 친일부역자들이 통절한 회개를 할 경우 사면하자는 의미로 해석된다”면서 “세리 삭개오가 회개하며 토색한 게 있다면 4배 갚겠다고 한 것과 같은 회개가 대사면의 전제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 목사가 품었던 새 나라에 대한 청사진은 1945년 9월 8일부터 미 군정이 시작되면서 논의도 하지 못한 채 무위로 돌아갔다.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장창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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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이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이고, 한·일 관계 악화로 이날에 대한 우리의 기억은 더 비장하다. 광복절 74주기를 맞아 우리나라 대표 민요 ‘아리랑’ 이야기를 소개한다. 아리랑의 어원과 의미에 대해선 많은 설이 있고 지역별로 500개 이상의 아리랑이 전해온다. 그중 가장 대표적 곡이 ‘경기 아리랑’이라 불리는 버전이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 발병 난다”는 바로 그 노래다.

다른 아리랑과 달리 이 노래에는 분명한 기원이 있다. 이 노래는 춘사 나운규가 감독과 주연을 맡아 1926년 개봉된 동명 영화의 주제곡이다. 원곡이 어느 정도 있었는지 모르지만, 이 노래는 영화의 변사인 김영환이 곡조를, 나운규가 가사를 쓴 창작곡이다. 대중에게 크게 인기를 얻은 최초의 영화 주제곡인 셈이다.

나운규는 영화인이 되기 전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17세에 3·1운동에 가담했다. 신흥무관학교에 입교해 독립군에 참여하려 했지만, 병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경성에서 밑바닥부터 영화를 배웠다. 배우로 먼저 두각을 보인 후 마침내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에 이른다. 처음부터 그는 영화로 조선 독립에 이바지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었다.

영화 ‘아리랑’은 단성사에서 개봉해 제작비 10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이후 단성사 직원 이수호가 판권을 넘겨받아 이듬해부터 이동상영단을 꾸렸고 조선 전역을 휩쓴 히트작이 됐다. 이 영화가 일제의 검열을 피한 것 자체가 기적이었는데 이는 제작자가 일본인 요도 도라조였기 때문이다. 나윤규는 기획과 제작, 상영과 홍보까지 모든 과정을 용의주도하게 진행했다.

영화의 필름은 현재 남아 있지 않아 어떤 작품이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각본과 몇 장의 스틸사진을 보면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낄 수 있다. 대략적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영진은 서울에 갔다가 이유 없이 광인이 돼 고향에 돌아온다. 누이가 마을의 유력자에게 겁탈당하자 그를 폭행하고 체포된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상황과 심정이 상징적으로 절묘하게 녹아있는 작품이다.

광인이 된 주인공은 영화에서 계속 아리랑을 흥얼거린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가 체포돼 호송될 때 마을 사람은 그를 위해 함께 이 노래를 부른다. 무성영화였으니 아마 변사가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영화관에서는 조선인 관객도 따라 부르며 눈물을 적셨다고 한다. 더욱이 유랑상영단은 가는 곳마다 이 노래를 부르며 영화를 홍보했다. 자연스럽게 입에서 입으로 옮겨 불리며 아리랑은 시대의 노래가 됐다. 이후 아리랑은 독립군에게, 또한 고향을 등지고 유리하는 조선 백성의 입을 통해 퍼져나가며 슬픈 애국의 노래로 지금껏 전해져 온다.

한편 이 노래는 뜻밖에도 미국 장로교 찬송가집에 포함돼 있다. 당시 한국에서 사역하던 미국 선교사가 이 노래의 가락에 감화돼 가사를 붙였다. ‘크리스트, 유 아 더 풀니스(Christ, You are the Fullness)’란 제목의 이 찬송 악보에는 ‘아리랑, 코리안 멜로디(Arirang, Korean Melody)’란 표현이 소개됐다. 찬송의 가사는 완전한 하나님인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해 우리를 살리고 그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게 했음을 찬미한다. 광복과 부활의 희망이 담긴 이 노래가 정작 한국 찬송가에 실리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노래는 삶의 여흥과 예술적 감성을 나타낼 뿐 아니라 시대적 상황을 담아내 만들어지고 대중에게 선택돼 불리게 된다. 100년 전 이 땅에서 불린 이 노래가 남북이 하나 되는 평화의 노래로 불릴 때 진정한 독립은 완성될 것이다. 아리랑은 남북한 모두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안익태의 친일 행적으로 논란이 된 현 애국가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만큼 아리랑이 언젠가 통일될 조국의 진정한 애국가로 자리매김할지 모른다.

아리랑은 그렇게 광복의 희망을 노래하는 민족의 노래이자 부활의 그리스도를 찬미하는 하늘의 노래로 우리 입에서 가슴으로 계속 전해질 것이다.

윤영훈(성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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