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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서 박사 한 알의 밀알 되어] 민간단체 최초 ‘장애아동 조기교실’ 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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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군효송 작성일19-08-14 21:2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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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창립 기념 예배이재서 세계밀알연합 총재(앞줄 왼쪽 네 번째)가 1997년 1월 미국 북가주밀알선교단 창립예배에 참석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세계밀알연합 제공
한국밀알선교단에서는 매년 10월 16일을 전후해 창립 기념예배를 드린다. 기념예배는 활동 초기에 가장 중요한 연중행사였다. 1주년 감사예배는 1980년 10월 16일 서울 서소문에 있는 평안교회 교육관에서 드렸는데 1년 동안 밀알의 기초를 놓기 위해 애쓴 11명의 단원에게 밀알 최초의 표창장을 수여했다.

1983년 10월 남서울교회 교육관에서 열린 4주년 기념행사는 손봉호(고신대 석좌교수) 장로님이 밀알과 본격적으로 동행하게 된 날이라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손 장로님은 그날 특강 강사로 강단에 올라 ‘기독교와 사회’를 주제로 강의해 주셨다. 모든 순서가 끝난 뒤 “밀알의 활동에 감명을 받았다. 앞으로 동역하자”고 말씀해 주신 장로님의 약속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사랑의 실천 운동 안내서

밀알운동 초창기 시절 우리가 펼친 활동 중 하나는 ‘사랑의 실천운동 안내서’라는 책자를 만든 일이었다. 당시 한경직 목사님이 회장으로 있던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에서 소외계층에 대한 기독교계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계몽 책자를 만들기로 하고 1983년 11월 그 일을 우리에게 의뢰했다.

밀알 안의 여러 전문가가 분야별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책은 6개월여만인 이듬해 4월 출간됐다. 한 목사님 이름으로 5만부를 비매품으로 발행해 전국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무상으로 보급했다. 지금 생각하면 극히 기본적인 자료에 불과했지만, 이 같은 책자가 처음으로 한국교회 전체의 이름으로 발간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거의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에게 전달됐기 때문에 소외계층을 알리는 계몽지 혹은 지침서로서 실질적인 사역에 영향을 줬다는 것도 뜻깊은 일이었다.

안내서는 150쪽 분량의 친절한 지침서였다. 가급적 너무 전문적인 내용을 싣는 것은 피했고 장애인을 포함해 사회적으로 소외된 대상들의 현황과 문제점, 선교적 실태, 문제해결 방안 등을 소개했다. 가장 중요한 내용은 그들을 이해하고 접근할 방법과 교회와 성도가 어떻게 그들을 도울 수 있는지에 대한 안내였다.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는 당시 개신교의 모든 교단이 참여한, 명실공히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구였다. 여러 단체 중에서도 우리에게 그 일을 맡겼던 것은 당시 밀알의 활동과 위상을 인정해 주는 일이었기에 감사했다.

밀알의 초석들

첫 1년은 단원들의 이동이 많았다. 임역원을 맡았다가 그만두는 예도 있었다. 그래서 자주 임원이 바뀌었고 어떤 때는 분위기 쇄신을 위해 일부러 바꾸는 예도 있었다. 그러나 단기간 활동하고 그만두더라도 그들의 참여는 밀알에 큰 의미를 남겼으며 모두가 밀알을 세운 별들이다. 그들의 참여가 길든 짧든, 그것이 모여 결국 초기 밀알을 만들었다.

모든 임역원은 내가 임명했지만, 불평하거나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본인들이 시간과 여건이 안 돼 성실히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을 늘 미안하게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밀알 같은 이들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보내주신 것 같다.

이재서 세계밀알연합 총재(앞줄 오른쪽 일곱 번째)가 1998년 8월 독일 함부르크 유럽밀알선교단 창립대회에 참석해 기념촬영하는 모습. 세계밀알연합 제공
밀알 장애아동 조기교실

밀알운동을 하다 보니 장애인의 여러 문제에 대해 상담을 하게 됐다. 가장 안타까운 상황 중 하나는 장애아동을 가진 부모들을 만나 교육에 관해 얘기를 나눌 때였다. 교육이 시급한 장애아동들임에도 나이가 어려 마땅히 보낼 교육기관이 없다는 게 마음 아팠다.

특수학교들은 대개 7~8세 이상이어야 입학을 허락했다. 소위 정신지체 아동을 위한 조기 교육 시설은 거의 전무했던 게 당시 한국 실정이었다. 유일하게 한 곳이 있기는 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관에 대학 특수교육학과 부설로 학령 전 정신지체아동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하지만 비용이 엄청나게 비쌌고 수용 인원도 30명을 넘지 못해 대다수 부모에겐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 현실에 절망하는 부모들을 만나면서 우리라도 그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밀알 장애아동 조기교실’이 1984년 3월 9일 밀알 사무실에서 개원한 배경이다. 이대 부설기관을 제외하고 우리나라 민간단체로서는 최초로 장애아동을 위한 조기교육 프로그램이 시작된 것이다.

장애아동 조기교실 개원식이 있던 날, 하늘과 땅의 모든 것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께서 다름 아닌 우리에게 이렇게 큰일을 하도록 허락해 주심을 뜨겁게 감사하면서 엄마 아빠의 손을 꼭 잡고 들어선 8명의 장애아동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3명의 전임 교사와 시간제 교사 등 모두가 조기교실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 믿고 오랜 기도와 각오로 임했다.

당시 밀알의 재정적 상황에선 조기교실을 개원하기 위해 물품 구입, 인건비 등 상당한 투자를 감수해야 했다. 밀알 조기교실은 성공적으로 안착했고 1989년 서울 충현교회로 사역지를 옮겨 오늘날 충현복지관으로 발전했다.

이런 일들이 진행되고 있던 1984년 7월 나는 또 다른 밀알의 사명을 안고 미국으로 떠나게 됐다. 사람들은 내가 떠나면 밀알이 흔들릴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그때의 밀알은 단장인 내가 떠나도 결코 흔들릴 수 없는 확고한 기반 위에 세워져 있었기에 전혀 걱정이 없었다.

이재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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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최기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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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주기를 맞아 김대중 전집 전30권이 완간됐다.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13일 김대중 전집 전30권 완간 출판기념회를 하고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용학 연세대 총장, 김홍업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권노갑 김대중기념사업회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김영민 기자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13일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기록물을 공개하고, 김 전 대통령의 대일 인식을 소개했다.

김대중도서관은 이날 서울 마포구의 도서관 내 컨벤션홀에서 김대중전집 30권 완간 출판 기념회를 갖고 전집에 포함된 언론 기고문, 메모, ‘옥중서신’ 일본어판 서문 등을 공개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이날 축사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통합과 화해 정치를 강조하며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날로 엄중해지고 있으며, 고차방정식의 해법이 요구되고 있다”며 “우리 모두 김대중 대통령이 보여주셨던 혜안과 리더십을 거울삼아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일본 경제보복과 관련 “지금 최악의 일본 총리를 만난 것 같다”며 “여러분과 지혜를 잘 모아서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한반도 지정학의 비극이 한반도 상공을 에워싸고 있는 가운데 새삼 김대중 대통령의 웅대한 지도력이 생각나는 즈음”이라고 말했다

도서관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청년 시절이던 1953년 10월 2일 언론에 ‘한일 우호의 길’이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게재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고문에서 “악독한 공산침략에 직면해 전 자유진영이 그의 생존을 위해 굳게 단결해야 할 차제”라며 “태평양반공동맹에 있어서도 같이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한일 양국의 반목 대립은 아주 반공세력의 강화는 물론 전기 반공동맹의 추진에도 치명적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썼다.

또 “단호히 일본의 옳지 못한 태도의 시정을 얻음으로써만이 진실로 영원한 양국 친선의 튼튼한 기초를 닦을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도서관 측은 “정전협정 체결 후 동북아 지역의 극단적인 군사적 대치가 지속하던 시기, 김 전 대통령은 한국의 안보와 국익적 관점에서 한일관계 정상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유신 정권에 맞서 일본에서 망명 투쟁을 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3년 4월 10일 친필로 작성한 메모도 공개됐다. 메모에는 “일본의 경제력, 팽창-재군비, 핵무장-대국야욕, 그들은 지배냐 종속밖에 모른다. 연결될 것인가?”라고 적혀있다.

아울러 일본 ‘주오공론’ 1973년 1월호에 게재된 기고문 ‘조국 한국의 비통한 현실, 독재정치의 도미노적 파급’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의 황폐화를 딛고 일어서 지금의 일본 국가를 건설한 일본민족의 끈기와 그 생명력, 그리고 성과에 대해 진심으로 높이 평가한다”며 일본의 외교적 역할을 주문했다.

특히 ‘아시아 민주공동체’(가칭)의 조직을 제안하며 “각국 민간의 이해와 선의를 증대시키는 문화교류를 위한 공동의 방안과 협조, 이것들을 위한 적극적 노력을 선두에 나서 진행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제시했다.

1983년 ‘옥중서신’ 일본어판 서문‘ 친필 초안에선 자신을 위해 구명운동을 진행하는 일본 인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며 “몇 겹으로 닫힌 한일 양국민 사이의 문을 뜻있는 동지들과의 협력으로 하루 속히 열어젖혀야 한다”고 쓰기도 했다.

도서관 측은 “김 전 대통령은 한일 사이에서 보편적 가치를 통한 연대를 중시하며 이 기반 위에서 한일관계 발전을 도모하고자 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당선 이후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이끌어내 한일관계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할 수 있었다”며 “이런 인식은 현재 한일관계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행사에는 김용학 연세대 총장, 박원순 서울시장,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인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등이 참석했다.

손봉석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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