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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성의 권리를 질문해야 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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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남나 작성일19-08-14 18:3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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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스X한사성]

리아(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정보공유 라이선스 2.0:영리금지]


사이버성폭력은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하는 젠더 폭력으로, 피해경험자의 여러 권리를 침해한다. 현재까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UN 자유권 규약 5차 심의 NGO 쟁점 보고서, UN 프라이버시권 특별 보고관 방한 대응을 위한 사전 보고서 제출 등의 활동을 통해 사이버성폭력이 침해하는 자유권의 영역과 프라이버시권 영역을 공식적으로 다룬 바 있다.

미국과 호주 등 프라이버시권 논의를 기반으로 촬영물을 이용한 사이버성폭력 범죄를 처벌하고 있는 나라가 많은 만큼 프라이버시권 보고서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는데, 그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동안 한국에서 이루어진 프라이버시권 보호에 대한 논의는 주로 국가가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하는 문제에 집중되었으며, 개인의 사생활에 ‘여성’을 제외시켜 온 면이 있었다. 누군가 여성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면 그 ‘누구’가 정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상관없이 중대한 기본권 침해가 이루어진 것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그리고 사이버성폭력은 그 자체로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심각하고 중대한 침해 행위다.”

그러나 여성의 프라이버시권 침해 상태는 즉각적으로 구제되기는커녕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남성의 권리’, ‘어쩔 수 없는 일’로 인식됐고, 따라서 여성의 프라이버시권 침해 상황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마치 ‘(남성의) 표현의 자유 침해’, ‘남성 프라이버시권의 침해’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이제 프라이버시권이 무엇인지를 젠더라는 렌즈를 가지고 다시 질문해야 한다. 지금처럼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지 못한 상황에서 여성을 보호하는 규제가 부재하고 여성의 프라이버시권 침해가 명백히 예견되는 상황이라면, 국가 차원의 플랫폼 규제 등 인터넷 공간에서의 규제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성별에 따른 프라이버시에 대한 위협과 특유의 혜택 및 경험, 그리고 프라이버시와 인권 원칙을 인식하는 상호교차적 접근방식을 채택해야 한다”¹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권리’들은 현실의 일부만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포 게시글 5건 중 1건 이상에 피해자를 특정할 수 있는 신상정보가 담겨 있었고, 그 신상정보의 절반 정도가 피해자의 이름이었다는 사실² 을 어떻게 프라이버시권 침해라는 관점으로만 말할 수 있을까.

[정보공유 라이선스 2.0:영리금지]


피해 지원 현장에서도 프라이버시권 개념은 한계를 갖는다. 예를 들어 불법촬영 및 유포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성폭력처벌법 14조의 경우,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사람의 신체 및 그 복제물을 촬영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이는 분명 피해자의 옷차림, 노출의 정도, 특정 신체부위의 부각 여부 등을 고려해 촬영물 내용의 ‘음란성’을 따지는 문제가 있으나, ‘사생활’을 기준으로 할 때보다 넓은 범위의 불법촬영물을 처벌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장점을 갖기도 한다. 프라이버시권 침해 여부로 불법촬영 및 유포 범죄를 처벌하는 몇몇 해외의 형사법은 한국 기준보다 더 많은 공공장소 불법촬영 등의 폭력을 놓치고 있다.

피해경험자가 각자의 맥락에서 정말 어떤 침해를 겪게 되는지,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오해하는지, 법이 무엇을 처벌하고 있는지,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는 국제 규약의 기준에 따라 피해를 서술하는 것과 또 다른 문제다. 우리는 다양한 피해 사례에서 발견하는 복잡하고도 파편화된 감각을 잘 정리하고 연결해 명확한 언어를 만들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있다고 믿어지지만 없고, 그래도 있어야 살기 때문에 힘을 내서 진짜 생겨나도록 만들 수밖에 없는, 우리의 존재에 귀속된 가치와 약속들을 준비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이 불법촬영 및 유포를 경험하지 않을 자유, 더 나아가서 성매매와 포르노에 사용되지 않아도 괜찮을 자유를 위해 싸워야 할 순간에 부족함이 없고 싶다.

자연스레 2019년의 국제연대체 활동 또한 성격이 달라지고 있다. 2018년 초에 처음 국제연대체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은 해외 서버에서 발생하는 사이버성폭력 피해를 지원하기 위함이었다. 2017년 한 해 동안 피해 지원을 진행해 보니, 유포 범죄의 38.9%가 해외 불법 포르노 사이트, 25.2%가 SNS에서 발생했다. 해외 온라인 플랫폼들은 국내 경찰의 요청에 잘 협조하지 않았고, 우리의 삭제 요구를 무시하거나 ‘공손한 말투로 말해라. 안 그러면 더 유포해 버리겠다’는 협박을 하기도 했다.

국경 없이 일어나는 성폭력 피해의 지원이 국내로만 한정될 때, 그에 따른 부담은 피해경험자가 지게 된다. 한사성이 지원한 피해경험자 중에서는 ‘다른 피해경험자를 위해 사용해 달라’며 경찰이 잡아주지 않는 해외 SNS 유포 가해자 추적 노하우를 13페이지 분량으로 작성해주신 분도 있다. 만약 국제 연대체를 만들어 해외 단체와 피해 지원을 연계하고, 지원 방법을 공유하면 이 불합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따라서 그때는 업무협약을 맺는 단체의 기준을 ‘1. 사이버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 2. 사이버성폭력 피해자 지원 내용에 있어서 전문성이 있음 3. 한국 불법포르노사이트의 서버 주소지 다수 보유국에서 활동하는 단체’로 잡아 두었다. 그러나 그런 단체는 의외로 많지 않았고, 한사성이 피해 지원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도 아직까지 별로 없었다. 도움을 받기보다는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드리는 일이 먼저인 상황 같다.

지금의 국제연대체는 피해 지원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이버성폭력 담론 형성의 의지를 가진 단체를 포함한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생각이나 연구를 공유하는 단위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최근에는 몇몇 국제 연구 프로젝트팀과도 긴밀하게 관계를 맺고 있는 중이다. 상업 포르노와 성매매가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나라일수록 그 심각성이 깊어질 뿐, 세계 사이버성폭력 대응 활동은 모두 어떤 지점에서든 젠더 위계를 반영하지 않은 기존 권리, 특히 ‘자유’ 개념과 전선을 형성하고 있고, 우리에겐 ‘사이버성폭력을 행할 권리’에 대항할 담론이 필요하니까.

1) 2019년 2월 27일, Joseph Cannatacithe,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s to privacy [The right to privacy: a gender perspective - Report of the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 to privacy]

2)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워커스 57호]

이 기사는 정보공유라이선스 2.0 : 영리금지'를 따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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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산의 다크투어 코스 중 하나인 ‘국치의 길’에서 만나는 통감관저터 비석과 거꾸로 세운 비석. 거꾸로 세운 비석은 을사늑약 체결 등 한국의 국권침탈에 앞장섰던 주한공사 동상의 잔해로 만든 것이다.

일제강점기 흔적 둘러보는 서울 도심 ‘다크투어’

남산 국치의 길

‘거꾸로 세운 비석’보며 치욕 기억

경제 침탈의 길

수탈 당했던 경성의 월스트리트

고종의 길

불과 120m… 아관파천의 비극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고문실·시구문… 참혹했던 현장


서울관광재단이 첨예한 한·일 갈등 속에서 맞는 광복절을 앞두고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를 둘러보는 ‘다크 투어’를 제안했다. ‘다크 투어’를 통해 식민지 역사를 기억하는 여행코스를 추천하는 것이다. 서울관광재단이 제안하는 여행코스를 따라가면 대부분 사라지고 희미해진 당시의 흔적 앞에서, 역사 여행은 눈으로 보고 즐기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바라보며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아픔을 기억하라…남산 국치의 길

서울의 랜드마크인 남산은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강화도조약 이후 서울에 들어온 일본인들은 남산 아래의 충무로 일대에 모여 살면서 영역을 넓혀갔다. 이후 일제의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남산 자락에 조선을 통치하기 위한 여러 시설이 들어섰다. ‘남산 국치의 길’은 그 흔적을 따라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기억하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길이다.

남산 국치의 길은 ‘한국통감관저 터’에서 시작한다. 한국통감관저는 1910년 8월 22일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 통감과 총리대신 이완용이 한일병합조약을 체결한 곳. 통감관저 터에는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기 위한 ‘기억의 터’가 있고, ‘한국통감관저 터’ 비석과 ‘거꾸로 세운 비석’이 서 있다. 거꾸로 세운 비석은 일제가 을사늑약 체결의 공으로 설치한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비석의 잔해를 모아, 치욕을 기억하고자 하는 의미로 거꾸로 세웠다. 길은 일제강점기 때 신사가 있던 자리에 들어선 리라초교와 숭의여대로 이어진다. 남산 서울교육청 과학전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신궁 계단의 일부였다. 조선신궁은 조선총독부가 남산에 있던 국사당을 인왕산으로 이전한 후 여의도 면적의 두 배에 가까운 규모로 조성한 신사.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위폐를 봉안하고 국가의 안녕을 위해 제사를 지내던 사당을 없애버리고, 일본의 건국 신과 천황을 숭배하는 공간을 만든 것이다. 길은 한국통감관저터(현 서울유스호스텔 아래)에서 한국통감부(서울애니메이션센터), 노기신사(리라초교 내 남산원), 경성신사(숭의여대)를 거쳐 한양공원(한양공원 표석), 조선신궁(한양도성 발굴지)까지 2㎞ 남짓 이어진다.

사진 위부터 일제강점기에 한국 및 대륙 경제 수탈을 위하여 일제가 세운 중앙은행이었던 조선은행 건물. ‘고종의 길’에 있는 구러시아공사관, 서대문형무소의 거울의 방.

#조선의 월스트리트…경제 침탈의 길

서울 종로의 보신각 남쪽 광교를 시작으로 숭례문을 지나 서울역까지 이르는 구간은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을 비롯해 수많은 은행이 밀집했던 금융 지역이었다. 현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자리에는 조선은행이 있었고, 맞은편에 있는 현 신세계백화점 옆 건물에는 조선저축은행이 있었다. 신한은행 광교 영업부 자리에는 한성은행, 광교약국 자리에는 민족계 은행인 동일은행 등도 있었다. ‘경성의 월스트리트’라고 불릴 수 있을 만큼 당시 경성에서 상업적으로 가장 발달한 공간이었다.

지금의 KEB하나은행 명동 사옥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있었다. 1908년 일제가 대한제국의 토지와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설치한 회사다.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을 통해 조선의 땅을 헐값으로 매입하거나 가로채 수많은 농지와 임야를 소유한 뒤 이를 일본인에게 싸게 팔아넘기는 특혜를 주거나 조선의 소작농들에게 땅을 빌려주고 높은 소작료를 징수했다. KEB하나은행 명동 사옥 앞에는 동양척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의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어 한국은행 화폐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는 옛 조선은행 건물을 들러보자. 일제는 1911년 조선 은행법을 만들고, 1912년 르네상스 양식의 3층 건물을 준공해 조선은행을 열었다. 일제는 이곳을 본점으로 해 한국 금융계를 장악하고 중국 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했다.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맞은편의 신세계백화점 본점도 함께 들러보자. 1929년 경성에 일본 미쓰이(三井) 그룹이 운영하는 한국 최초의 백화점인 미쓰코시백화점이 문을 열었다. 미쓰코시백화점은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의 건물을 지었는데, 지금 신세계백화점 본점 건물이 당시 외형을 그대로 보존한 채 영업하고 있다.

# 치욕을 기억하라…고종의 길

일제에 의해 명성왕후가 시해되자 고종은 경복궁을 몰래 빠져나와 러시아 공사관으로 몸을 피하는데 이 사건을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2011년까지 미국 대사관 직원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부지가 한·미 정부의 합의에 따라 우리나라 소유로 바뀌면서, 아관파천 당시 고종이 경복궁을 빠져나왔던 길이 복원됐다. 힘이 없던 나라의 치욕을 기억하는 고종의 길은 총 길이가 불과 120m로 천천히 걸어도 10분이 되지 않는 짧은 코스다. 궁녀가 타던 가마에 몸을 싣고 도망쳐야 했던 고종의 당시 상황을 떠올려보면, 그 길을 걷는 10분이 마치 1시간처럼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한 나라의 왕이자 남편으로서 고종이 겪었을 슬픔과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리라.

고종의 길 끝에 다다르면 아관파천의 목적지인 구러시아 공사관 건물이 나타난다. 6·25전쟁 당시 파괴돼 첨탑과 지하 통로만 남아있다. 안전 문제로 인해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돼 있어 밖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고종은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서 머물다가 외국 공관이 밀집해 있던 정동의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된다.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격동의 시대로 흘러가는 조선에서 발생한 주요 사건은 덕수궁이 위치한 정동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된다. 덕수궁에서 가장 유심히 둘러볼 곳은 중명전이다. 서양식 궁궐 건축물로 황실도서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은 중명전은 덕수궁 화재 후 고종의 집무실로 사용됐다. 중명전에서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돼 조선은 외교권을 상실하게 되고, 5년 후에는 일제식민지가 되는 한일병합조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때문에 중명전은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적 장소다. 중명전을 나와 정동길을 걸으며 서울시립미술관, 정동교회, 배재학당, 이화학당을 느긋하게 둘러보자.

# 저절로 숙연…서대문 형무소 역사관

서대문형무소에는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투옥됐다. 1907년 경성감옥으로 시작해 서대문감옥을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이 변경됐고, 해방 후에는 서울구치소로 역사를 이어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철거가 논의되기도 했으나, 교육의 현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역사관으로 복원했다. 일제강점기 때 경성감옥은 옥사 규모만 480여 평에 달했고, 이곳을 거쳐 간 독립투사만 4만 명이 넘었다. 붉은 벽돌로 이뤄진 전시실에는 형무소를 거쳐 간 독립운동가 가운데 현재까지 남아 있는 5000여 장의 수형 기록표를 모아 놓았다. 앳된 얼굴을 한 소년, 소녀부터 백발이 성한 노인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제에 대항했던 그들의 모습을 보면 숙연해진다.

사형장 입구에는 미루나무 한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다. 독립투사들은 사형장으로 들어서기 전 나무 앞에 서서 마지막으로 울분을 토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줄기 빛조차 허락되지 않던 독방과 섬뜩했던 고문 장면을 복원해놓은 고문실, 시체를 몰래 내다 버리던 시구문까지 둘러보면 당시의 흔적을 더듬어볼 수 있다.

박경일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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