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멍 뚫린 경찰개혁안, ‘공룡경찰’ 막기엔 미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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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여송
작성일19-05-2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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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수사본부 외풍 차단 미지수 / 정치정보 수집금지 실효성 의문 / 국민 눈높이·현실 맞게 보완해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가 어제 일반경찰과 수사경찰을 분리할 국가수사본부 신설과 정보경찰의 정치관여·불법사찰 원천차단 등을 골자로 한 경찰개혁안을 발표했다. 조정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일반경찰의 수사관여 통제와 자치경찰제 시범지역 추가 확대를 검토하는 등 경찰 권한을 분산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와대 조국 민정수석, 강기정 정무수석이 당·정·청 협의회에 참석하는 등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검찰의 조직적 반발을 무력화하기 위해 총력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하지만 각론 차원의 준비가 미흡해 ‘공룡경찰’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정·청은 경찰청 내에 별도 수사 조직인 국가수사본부를 만들기로 했다. 국가수사본부장이 수사경찰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 일선 경찰서 수사·형사과장이 사건 수사를 현장에서 지휘하며, 경찰청장이나 지방청장·경찰서장 등 관서장은 원칙적으로 구체적인 수사지휘를 할 수 없게 된다.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공룡경찰’을 막기 위해 행정경찰과 수사경찰을 분리키로 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동안 윗선 눈치를 본다는 비판을 받아온 수사·형사 중간 간부가 지방청장·경찰서장의 압력에서 자유로울지 의문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수사본부 신설이 오히려 경찰을 비대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상당하다.
정보경찰을 수사경찰과 분리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당·정·청은 시민사회단체의 경찰청 정보국 폐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정보경찰 활동규칙을 만들어 정보수집 기준을 명확히 규정하고 법령상 ‘정치관여 시 형사처벌’을 명문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경찰은 치안정보나 동향정보를 정치정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정보 수집을 금지하는 게 실효성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경찰개혁안 발표는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경찰 비대화를 막을 각론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조 정책위의장이 “현 단계는 당·정·청 협의 결과, 큰 틀을 제시한 것이고 자세한 것은 추후 다른 형태로 설명하겠다”고 말한 것을 봐도 그렇다. 검찰은 “실효적·근본적 대책이 아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경찰 권한을 키워주면서 통제장치를 확보하지 못하면 또 다른 ‘무소불위’ 수사기관이 될 우려가 크다. 수사권 문제는 수십년간 홍역을 치르고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다. 서둘러 결정해선 안 된다. 국민 눈높이에 맞게 더 정교하게 보완해야 한다.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국가수사본부 외풍 차단 미지수 / 정치정보 수집금지 실효성 의문 / 국민 눈높이·현실 맞게 보완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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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청은 경찰청 내에 별도 수사 조직인 국가수사본부를 만들기로 했다. 국가수사본부장이 수사경찰 지휘·감독권을 행사한다. 일선 경찰서 수사·형사과장이 사건 수사를 현장에서 지휘하며, 경찰청장이나 지방청장·경찰서장 등 관서장은 원칙적으로 구체적인 수사지휘를 할 수 없게 된다.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공룡경찰’을 막기 위해 행정경찰과 수사경찰을 분리키로 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동안 윗선 눈치를 본다는 비판을 받아온 수사·형사 중간 간부가 지방청장·경찰서장의 압력에서 자유로울지 의문이다.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수사본부 신설이 오히려 경찰을 비대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상당하다.
정보경찰을 수사경찰과 분리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당·정·청은 시민사회단체의 경찰청 정보국 폐지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정보경찰 활동규칙을 만들어 정보수집 기준을 명확히 규정하고 법령상 ‘정치관여 시 형사처벌’을 명문화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경찰은 치안정보나 동향정보를 정치정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정보 수집을 금지하는 게 실효성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경찰개혁안 발표는 서두른 감이 없지 않다. ‘경찰 비대화를 막을 각론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조 정책위의장이 “현 단계는 당·정·청 협의 결과, 큰 틀을 제시한 것이고 자세한 것은 추후 다른 형태로 설명하겠다”고 말한 것을 봐도 그렇다. 검찰은 “실효적·근본적 대책이 아니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경찰 권한을 키워주면서 통제장치를 확보하지 못하면 또 다른 ‘무소불위’ 수사기관이 될 우려가 크다. 수사권 문제는 수십년간 홍역을 치르고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다. 서둘러 결정해선 안 된다. 국민 눈높이에 맞게 더 정교하게 보완해야 한다.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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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보는 우리 역사]불국사의 석가탑이 저물고 새 시대 물꼬 튼 `선종' 성지 △국보 제122호 △제작시기 : 9세기 △위 치 :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
85.진전사지 3층석탑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석탑에 대해 물었을때 처음 생각나는 탑은 불국사의 석가탑일 것이다. 석가탑이 보여주는 완벽한 비례미는 3층석탑의 완성이며 이는 곧 8세기 통일신라 최전성기를 떠받치던 지배층과 그들의 사상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허나 달이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그토록 강건했던 통일신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라벌을 제외하고 그 영향력을 서서히 상실하게 된다. 힘의 공백지에는 호족과 함께 새로운 사상이 꿈틀대기 시작하고 그것들의 색이 입혀진 사찰이 하나둘씩 생겨난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찰이 양양군 강현면에 위치한 진전사와 3층석탑이다. 진전사는 당나라에서 유학하다 귀국해 이 땅에 최초로 선종을 전한 도의선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개인의 수행과 사색을 우선하는 선종은 당시 지역의 호족과 민초들의 일상에 깊게 파고들었고 이는 기존 지배세력을 대변하던 불경과 계율을 중시하던 호국불교의 쇠퇴를 의미했다.
사상의 교체는 필연적으로 지배세력의 교체를 불러온다. 호족들 간의 다툼은 후삼국 시대로 이어지고 60여년의 혼란기를 극복한 이는 송악의 호족이었던 왕건이었다. 불국사와 석가탑으로 대표되는 지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의 물꼬를 텄던 선종이 처음 자리를 잡았던 진전사와 3층석탑이 가진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진전사의 본 모습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우뚝 세워진 3층석탑이 이곳이 절터였음을 증언한다. 진전사지 3층석탑은 석가탑과 비교해 아담한 맛이 느껴진다. 탑의 기단 위 아래로 정교하게 화불과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3층석탑 위쪽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부도가 남아있는데 학계에서는 도의선사의 부도로 추정하고 있다. 어디선가 본 것과 같은 화려한 부도가 아니라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흡사 현대에 만들어진 조각품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든다. 참고로 기자가 본 부도 중 제일 크다.
김대호기자 [email protected]·국립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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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보는 우리 역사]불국사의 석가탑이 저물고 새 시대 물꼬 튼 `선종' 성지 △국보 제122호 △제작시기 : 9세기 △위 치 : 양양군 강현면 둔전리85.진전사지 3층석탑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석탑에 대해 물었을때 처음 생각나는 탑은 불국사의 석가탑일 것이다. 석가탑이 보여주는 완벽한 비례미는 3층석탑의 완성이며 이는 곧 8세기 통일신라 최전성기를 떠받치던 지배층과 그들의 사상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이다.
허나 달이 차면 기운다고 했던가. 그토록 강건했던 통일신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라벌을 제외하고 그 영향력을 서서히 상실하게 된다. 힘의 공백지에는 호족과 함께 새로운 사상이 꿈틀대기 시작하고 그것들의 색이 입혀진 사찰이 하나둘씩 생겨난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찰이 양양군 강현면에 위치한 진전사와 3층석탑이다. 진전사는 당나라에서 유학하다 귀국해 이 땅에 최초로 선종을 전한 도의선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개인의 수행과 사색을 우선하는 선종은 당시 지역의 호족과 민초들의 일상에 깊게 파고들었고 이는 기존 지배세력을 대변하던 불경과 계율을 중시하던 호국불교의 쇠퇴를 의미했다.
사상의 교체는 필연적으로 지배세력의 교체를 불러온다. 호족들 간의 다툼은 후삼국 시대로 이어지고 60여년의 혼란기를 극복한 이는 송악의 호족이었던 왕건이었다. 불국사와 석가탑으로 대표되는 지난 시대가 저물고 새 시대의 물꼬를 텄던 선종이 처음 자리를 잡았던 진전사와 3층석탑이 가진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진전사의 본 모습은 알 길이 없다. 다만 우뚝 세워진 3층석탑이 이곳이 절터였음을 증언한다. 진전사지 3층석탑은 석가탑과 비교해 아담한 맛이 느껴진다. 탑의 기단 위 아래로 정교하게 화불과 팔부중상이 새겨져 있어 눈길을 끈다. 3층석탑 위쪽에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부도가 남아있는데 학계에서는 도의선사의 부도로 추정하고 있다. 어디선가 본 것과 같은 화려한 부도가 아니라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흡사 현대에 만들어진 조각품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든다. 참고로 기자가 본 부도 중 제일 크다.
김대호기자 [email protected]·국립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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