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F포토기획] '선거의 달인' 김종인의 타임라인, '다음 행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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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여송
작성일20-05-04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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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왼쪽)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6년 1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영상기획부
[더팩트ㅣ배정한 기자] 코로나19 정국 속에서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거대 여당을 탄생시키며 막을 내렸다. 그 후 지역구 84석 확보에 그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당 재건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지만 진통을 겪고 있다. 심재철 원내대표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을 내려놓은 황교안 대표의 빈자리를 김종인 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대체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지만 영남권 다선 의원들의 당권 장악을 위한 비대위 체제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28일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비대위원장의 임기 제한을 없애기 위한 당헌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를 의결하려 했지만 정원 45명 중 과반에 못 미치는 17명만 참석해 상임전국위원회 자체가 불발됐다. 하지만 이후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김 위원장의 임명안이 통과되면서 반쪽 비대위 체제가 진행되는듯했으나 제한된 임기의 비대위원장직을 김 전 선대위원장 측에서 거절을 하며 끝내 무산됐다.
'선거의 달인'이라고 불리며 총선과 대선에 등장하는 김종인 전 선대위원장, 정치인들이 애간장을 태우며 그의 영입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전 선대위원장은 지난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 체제를 가동한 한나라당에 구원투수로 나서 당시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근혜 의원과 함께 비대위원으로 활동했다.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꾼 뒤 의석수 과반 확보를 이끌어내며 총선 승리에 힘을 보탰다. 이후 총선 승리의 탄력을 받아 그해 12월에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청와대로 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12년 1월 2일, 한나라당 새해 첫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한 김종인 비대위원(왼쪽 두번째)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세번째).
2012년 12월 19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제18대 대통령 선거 개표 상황을 지켜보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가운데).
보수정당에서 다양한 활약을 보인 김 전 선대위원장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삼고초려 끝에 진보정당의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수락했다.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김 전 선대위원장은 많은 우여곡절 끝에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같은해 말 세월호 참사로 촉발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등 박 전 대통령의 탄핵에도 일조했다. 이후 비어 있는 청와대에 입성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대선 출마 선언을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7일 만에 뜻을 접었다. 결국 19대 대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며 10년 만에 정권이 바뀌었다.
2016년 1월 5일, 더불어민주당 20대 총선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왼쪽 세번째)이 국회에서 문재인 대표(왼쪽 네번째)와 손을 잡고 있다.
2016년 3월 6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오른쪽)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4.13총선 응원가 뮤직 비디오 촬영에 참석해 미소를 짓고 있다.
2016년 3월 22일, 당무를 거부한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김 대표 자택을 찾은 문재인 전 대표.
2016년 3월 22일, 문재인 전 대표를 만난 뒤 비대위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자택을 나서는 김종인 비대위 대표.
2016년 4월 8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왼쪽)가 경기 의정부역 일대를 찾아 20대 총선 의정부갑에 출마한 문희상 후보와 함께 유세를 하고 있다.
2016년 4월 13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운데)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20대 총선 종합상항실에서 당선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2016년 6월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하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2016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진행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대회에 참석한 김종인 비대위 대표(왼쪽 두번째)와 문재인 전 대표(가운데).
2017년 4월 6일,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운데)가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한 뒤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한동안 존재감 없이 지내던 김 위원장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정권심판론'을 앞세운 미래통합당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하며 다시 보수정당으로 돌아갔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손을 잡은 김 위원장은 한때는 적이었던 국회의원 후보들의 지원유세를 돌며 거대 야당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총선이 끝나고 김 전 선대위원장은 자연인으로 돌아갔다.
총선 참패를 수습하고 2년 뒤 대선을 준비해야 하는 미래통합당은 또 다시 김 전 선대위원장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선거의 달인'과 '선거기술자'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붙는 프로 정치인 김 전 선대위원장의 선택에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2020년 3월 30일, 미래통합당 총괄선거대책위원장직을 수락한 김종인 위원장(왼쪽 두번째)과 황교안 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2020년 4월 12일,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황교안 미래통합당 후보(왼쪽)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는 김종인 위원장.
2020년 4월 23일,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직을 고민중인 김종인 전 선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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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선대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왼쪽)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016년 1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 사진영상기획부[더팩트ㅣ배정한 기자] 코로나19 정국 속에서 치러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거대 여당을 탄생시키며 막을 내렸다. 그 후 지역구 84석 확보에 그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당 재건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지만 진통을 겪고 있다. 심재철 원내대표가 총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을 내려놓은 황교안 대표의 빈자리를 김종인 전 선거대책위원장으로 대체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지만 영남권 다선 의원들의 당권 장악을 위한 비대위 체제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래통합당은 28일 상임전국위원회를 열어 김종인 비대위 체제에서 비대위원장의 임기 제한을 없애기 위한 당헌 개정안을 발의하고 이를 의결하려 했지만 정원 45명 중 과반에 못 미치는 17명만 참석해 상임전국위원회 자체가 불발됐다. 하지만 이후 열린 전국위원회에서 김 위원장의 임명안이 통과되면서 반쪽 비대위 체제가 진행되는듯했으나 제한된 임기의 비대위원장직을 김 전 선대위원장 측에서 거절을 하며 끝내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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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선대위원장은 지난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비대위 체제를 가동한 한나라당에 구원투수로 나서 당시 '선거의 여왕'으로 불렸던 박근혜 의원과 함께 비대위원으로 활동했다. 새누리당으로 간판을 바꾼 뒤 의석수 과반 확보를 이끌어내며 총선 승리에 힘을 보탰다. 이후 총선 승리의 탄력을 받아 그해 12월에 치러진 18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청와대로 보내는데 큰 역할을 했다.
2012년 1월 2일, 한나라당 새해 첫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한 김종인 비대위원(왼쪽 두번째)과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왼쪽 세번째).
2012년 12월 19일, 새누리당 당사에서 제18대 대통령 선거 개표 상황을 지켜보는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위원장(가운데).보수정당에서 다양한 활약을 보인 김 전 선대위원장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삼고초려 끝에 진보정당의 선거대책위원장직을 수락했다.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김 전 선대위원장은 많은 우여곡절 끝에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승리를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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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월 5일, 더불어민주당 20대 총선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영입된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왼쪽 세번째)이 국회에서 문재인 대표(왼쪽 네번째)와 손을 잡고 있다.
2016년 3월 6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오른쪽)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4.13총선 응원가 뮤직 비디오 촬영에 참석해 미소를 짓고 있다.
2016년 3월 22일, 당무를 거부한 김종인 전 비대위 대표를 설득하기 위해 김 대표 자택을 찾은 문재인 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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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8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왼쪽)가 경기 의정부역 일대를 찾아 20대 총선 의정부갑에 출마한 문희상 후보와 함께 유세를 하고 있다.
2016년 4월 13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가운데)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20대 총선 종합상항실에서 당선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2016년 6월 21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하는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
2016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진행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탄대회에 참석한 김종인 비대위 대표(왼쪽 두번째)와 문재인 전 대표(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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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디자이너가 2013년 4월 아프리카 동북부 남수단의 톤즈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다.
‘내가 무슨 대단한 일을 했다고.’
국민일보를 통해 희망고를 소개할 기회를 갖게 됐을 때 가졌던 마음이다.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많은 분과 나누며 흐트러졌던 내 마음을 바로잡고 나아가길 하나님이 바라셔서 허락해주신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연재하면서 그동안 드러내놓지 못했던 걸 말하게 하시고 알게 모르게 저질렀던 잘못과 실수들을 떠올리며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 같아 감사했다.
나는 적성에 맞지도 않는 사업이라는 걸 하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고 마음고생도 제법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하나님이 당신한테 무슨 일을 맡기시려고 이렇게 많은 연단을 주시는지 모르겠다”며 위로했다.
마침내 만난 게 희망고였다. 희망고는 어머니의 꿈이었음을 알게 됐고 지난 10년간 진행한 ‘희망의 망고나무 프로젝트’는 어머니의 꿈을 이루기 위한 세월이었던 것 같다.
살아생전 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을 ‘장한 사람’이라 부르시곤 하셨다. 만약 어머니가 배고픔, 아픔, 고통의 앞에서도 태연하게 견디며 웃고 춤추고 노래하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셨다면 장한 사람이라며 얼마나 칭찬하셨을까 상상해 본다.
나는 하나님이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신 게 사랑할 수 있는 마음과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주어진 시간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가 우리에게 주신 숙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분이 “왜 하필 아프리카냐, 애 하필 한센인이냐”고 묻는다.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냥 심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랑하니까 보고 싶고 가고 싶었다. 뭔가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손잡고 해보고 싶었다.
이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도 많이 하신다. “어떤 외부의 어려움보다 가장 큰 적은 나 자신”이라고 말씀드리곤 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내가 끝까지 투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생각하면 두려움이 사라졌다.
마가복음 9장 23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말씀은 희망고를 진행하면서 내가 의지했던 구절이다. 희망고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그분께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알기에 담담하게 일할 수 있었다.
올 한 해 안식년을 가지며 나는 톤즈에 가 있으려고 했지만, 코로나로 무산됐다. 모든 길이 막혀 언제 갈 수 있을지 막연한 가운데 오늘도 기도 내용은 한결같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제게 주신 시간 안에서 아버지께서 기대하시고 원하시는 일이 무엇이며, 그 안에 숨겨진 당신의 뜻이 무엇인지 잘 깨달을 수 있는 성숙한 딸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께서 제게 맡겨주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무조건 감사히 받고 기쁘게 순종하리라 다짐합니다. 그리고 제가 잘못할 때는 용서하지 마옵시고 심하게 꾸짖고 벌을 주시어 빨리 바로 잡을 수 있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프리카 식구들에게 ‘희망’이란 단어가 그들 삶의 중심이 되는 날을 꿈꾸며 나의 얘기를 마친다.
정리=서윤경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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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를 통해 희망고를 소개할 기회를 갖게 됐을 때 가졌던 마음이다. 어머니에 관한 얘기를 많은 분과 나누며 흐트러졌던 내 마음을 바로잡고 나아가길 하나님이 바라셔서 허락해주신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연재하면서 그동안 드러내놓지 못했던 걸 말하게 하시고 알게 모르게 저질렀던 잘못과 실수들을 떠올리며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 같아 감사했다.
나는 적성에 맞지도 않는 사업이라는 걸 하면서 수많은 일을 겪었고 마음고생도 제법 했다. 그때마다 남편은 “하나님이 당신한테 무슨 일을 맡기시려고 이렇게 많은 연단을 주시는지 모르겠다”며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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