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4월 3일 하루만의 사건 아니에요, 7년 7개월간 수만 명 희생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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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효송
작성일19-04-0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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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년중앙 친구 여러분. 9기 학생기자 정가희입니다. 해마다 4월 3일이 되면 제가 다니는 제주 아라초등학교에서는 4·3사건 관련 영상을 보고 묵념을 하고, 글짓기도 합니다. 저학년 때는 4·3 영상을 보는 것이 무섭기만 했는데 고학년이 되어 역사를 배우고 4·3추념식에 참석해 보니 4·3이 잔인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역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 제2조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흔히 4월 3일 하루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무려 7년 7개월 동안 벌어진 일이죠.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렸어요. 북촌국민학교(현 북촌초등학교)에서 행사를 마친 사람들은 가두시위에 나섰죠. 이때 관덕정 앞에서 구경하던 어린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에 치여 다쳤고, 그냥 지나가려던 경찰에게 사람들이 항의하다 돌을 던지자 무장경찰이 군중을 향해 총을 쏴 6명이 사망해요.
제주도민은 이 3·1사건에 항의하여 3월 10~22일 민·관 합동 총파업을 벌입니다. 파업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생산 활동이나 업무 수행 등 모든 일을 멈추는 거죠. 학생은 학교를 안 가고, 가게나 시장에선 물건을 팔지 않고, 공무원도 행정 일을 멈췄죠. 당시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전이라 미국 군사정부(미군정)가 다스리고 있었어요. 미군정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지목했죠. 다른 지역 사람인 응원경찰을 파견하고 극우청년단체인 서북청년회(서청)을 보내 ‘빨갱이 사냥’을 한다며 사람들을 잡아가고 제주도를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약탈과 만행에 민심은 흉흉해졌죠. 한반도는 분단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요. 남쪽만의 단독 선거인 5·10선거를 앞둔 1948년 4월 3일, 분단을 막고 서청의 탄압에 저항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350명의 무장대가 12개 경찰지서와 서청 단원의 집을 습격했죠. 당시 5·10선거를 반대하는 유혈사태는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요. 제주도의 경우 4월 28일 무장대와 미군정의 협상이 이뤄져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협상 사흘 만에 터졌죠. 무장대를 가장한 이들이 오라리마을에 불을 지르고 난동을 피우는 ‘오라리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미군정은 이후 강경진압으로 돌아섰죠.
그럼 5·10선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주도에선 3명의 국회의원 중 1명만 뽑혔습니다. 나머지 2개 선거구에선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됐죠. 다른 지역에서는 유권자의 95.5%가 투표에 참가해 198명의 의원을 뽑았습니다. 이들은 헌법을 만들어 7월 17일에 공포했고, 그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를 만들었죠. 8월 15일 수립된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군 병력을 더 보냅니다.
10월 11일, 제주도에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해안에서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해요. 군경토벌대는 이때부터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생하기 시작했습니다. 11월 17일에는 계엄령을 내렸죠. 중산간지대에 있는 마을들을 초토화시켰을 뿐 아니라 해안마을로 내려간 주민들까지 무장대에 협조했다며 무자비하게 살해했죠. 이에 무장대 등 산에 오른 사람들도 경찰 가족과 우익인사를 살해하고 식량을 약탈했습니다. 복수는 복수로, 증오는 충돌로 이어져 민간인들은 ‘산도 무섭고 군경도 무서운’ 상황에서 희생당했죠.
1949년 3월 “산에서 내려와 귀순하면 과거 행적을 묻지 않고 살려주겠다”는 선무공작이 전개됩니다. 한라산에 올랐던 약 1만 명이 내려왔지만 방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1600여 명이 총살당하거나 형무소로 보내졌죠. 한국전쟁 때도 예비검속(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는 사람을 처분하는 것)으로 희생이 이어졌고요. 한라산 금족지역은 1954년 9월 21일이 되어서야 전면 개방됐습니다.
4·3은 그 기간만큼이나 희생도 컸죠.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4·3위원회)가 확정한 희생자 수는 1만4233명(2017년 기준)이에요. 이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희생자 수치로, 진상조사보고서에선 2만5000~3만 명으로 추정하죠.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겁니다. 또 가옥 4만여 채가 소실되었으며, 학교·면사무소 등 공공기관 건물과 각종 산업시설이 파괴되고, 중산간지역의 상당수 마을이 폐허로 변했죠.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후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주민도 있지만 집중피해를 입은 곳의 경우 돌아가지 않은 이들도 많아 버려진 마을도 남아있어요.
오랫동안 4·3은 잊혔습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몰락하며 시작된 4·3 관련 논의는 5·16군사정변으로 중단, 이후 20여년간 금기시됐죠.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거세지며 1989년 41주기 4·3추모제가 처음 공개적으로 열렸고, 제주4·3연구소가 창립됩니다.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4·3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김대중 후보는 대통령이 된 뒤 2000년 1월 4·3특별법에 서명해요. 4·3특별법은 제주 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 희생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이죠. 이후 진상규명, 희생자 유족 지원과 기념사업이 추진됐고 2003년 10월에는 2년여의 조사 끝에 진상조사보고서가 공식 확정됐어요. 보고서는 “정부는 이 불행한 사건을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가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희생자와 그 유족을 위로하고 적절한 명예회복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고 마무리됐는데요. 보름 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를 방문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올해는 4·3사건 71주년이죠. 저는 가족과 함께 4·3평화기념관과 너븐숭이 4·3기념관. 북촌초등학교에 다녀왔어요.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4·3평화기념관은 1~6관의 상설전시관과 다랑쉬 특별전시관으로 구성돼 4·3의 원인부터 진상규명 과정까지 살펴볼 수 있죠. 특히 1관에 있는 ‘백비’는 비문 없는 비석인데요. 4·3의 진정한 해결이 이루어지는 날, 비로소 비문이 새겨질 것이며 누워 있는 비석도 세워질 것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다랑쉬 특별전시관은 1948년 11명의 민간인이 토벌대에 의해 질식사한 동굴인 ‘다랑쉬굴’의 내부를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해 당시 긴박했던 피난생활과 학살 상황을 느낄 수 있었죠. 전시를 다 보고 나가는 통로에는 수많은 4·3희생자들의 사진이 있었는데 사진을 보니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4·3평화기념관 안내데스크에서 “동백꽃 배지 주세요” 하면 무료로 배지를 받을 수 있어요. 동백꽃은 4·3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꽃이죠. 기념관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4·3어린이체험관이 있어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4·3 이야기를 총 5개의 전시실에서 볼 수 있죠. 11세 이하 어린이라면 이곳을 추천합니다.
기념관이 자리한 4·3평화공원에는 위령탑도 세워져 있어요. 위령탑 주위를 둘러싼 명비에는 마을별로 희생자 약 1만5000명의 성별·연령·사망일시와 장소가 간결하게 기록됐죠. 이곳에서는 매년 4·3추념식이 열립니다. 지난해 제70주년 4·3추념식에는 저도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를 직접 들었죠.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취재진이 왔는데, 신문과 방송을 통해 4·3이 많이 알려져서 감사했습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너븐숭이 4·3기념관이에요. 너븐숭이는 제주도 말로 ‘넓은 웅덩이’라는 뜻으로, 당시 300여 명의 주민이 학살된 곳입니다. 기념관 옆에는 한 살, 두 살, 네 살, 일곱 살의 나이에 희생된 아이들의 무덤이 있어요. 애기무덤을 보니 죄 없는 아이들까지 무자비하게 죽인 토벌대에게 매우 화가 났죠. 애기무덤 옆 돌탑에는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는 인형과 꽃, 간식 등이 놓여있었어요.
너븐숭이 기념관 근처에는 북촌초등학교가 있습니다. 당시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던 곳이죠. 1949년 1월 17일 북촌사건으로 군 토벌대에 의해 주민 350여 명이 희생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폐교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외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제가 초등학생이라 상징적인 느낌으로 들러봤죠.
4·3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소중 친구들에게 초·중생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할게요. 장란희 작가의 『무명천 할머니』, 권윤덕 작가의 『나무도장』, 신여랑·오경임·현택훈 작가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 영화로도 만들어진 오멸 작가의 『지슬』입니다. 저도 다 읽어봤는데요, 특히 처음 읽었던 『나무도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책이고, 2015년 열렸던 권윤덕 작가 북콘서트에 가서 강의도 들었죠.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으로 꼽히는 4·3. 소년중앙 독자들도 제주도를 여행하게 된다면 4.3유적지를 꼭 방문했으면 좋겠어요. 또, 4·3을 우리 역사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정가희(제주 아라초 6) 학생기자·김현정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정가희 학생기자·중앙포토, 자료=제주4·3평화재단·제주4·3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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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년중앙 친구 여러분. 9기 학생기자 정가희입니다. 해마다 4월 3일이 되면 제가 다니는 제주 아라초등학교에서는 4·3사건 관련 영상을 보고 묵념을 하고, 글짓기도 합니다. 저학년 때는 4·3 영상을 보는 것이 무섭기만 했는데 고학년이 되어 역사를 배우고 4·3추념식에 참석해 보니 4·3이 잔인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역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4·3특별법) 제2조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흔히 4월 3일 하루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무려 7년 7개월 동안 벌어진 일이죠.
1947년 3월 1일,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렸어요. 북촌국민학교(현 북촌초등학교)에서 행사를 마친 사람들은 가두시위에 나섰죠. 이때 관덕정 앞에서 구경하던 어린이가 기마경찰이 탄 말에 치여 다쳤고, 그냥 지나가려던 경찰에게 사람들이 항의하다 돌을 던지자 무장경찰이 군중을 향해 총을 쏴 6명이 사망해요.
제주도민은 이 3·1사건에 항의하여 3월 10~22일 민·관 합동 총파업을 벌입니다. 파업은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생산 활동이나 업무 수행 등 모든 일을 멈추는 거죠. 학생은 학교를 안 가고, 가게나 시장에선 물건을 팔지 않고, 공무원도 행정 일을 멈췄죠. 당시 우리나라는 정부 수립 전이라 미국 군사정부(미군정)가 다스리고 있었어요. 미군정은 제주도를 ‘붉은 섬’으로 지목했죠. 다른 지역 사람인 응원경찰을 파견하고 극우청년단체인 서북청년회(서청)을 보내 ‘빨갱이 사냥’을 한다며 사람들을 잡아가고 제주도를 장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약탈과 만행에 민심은 흉흉해졌죠. 한반도는 분단의 위기에 직면해 있었고요. 남쪽만의 단독 선거인 5·10선거를 앞둔 1948년 4월 3일, 분단을 막고 서청의 탄압에 저항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350명의 무장대가 12개 경찰지서와 서청 단원의 집을 습격했죠. 당시 5·10선거를 반대하는 유혈사태는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는데요. 제주도의 경우 4월 28일 무장대와 미군정의 협상이 이뤄져 평화롭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습니다. 문제는 협상 사흘 만에 터졌죠. 무장대를 가장한 이들이 오라리마을에 불을 지르고 난동을 피우는 ‘오라리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미군정은 이후 강경진압으로 돌아섰죠.
그럼 5·10선거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주도에선 3명의 국회의원 중 1명만 뽑혔습니다. 나머지 2개 선거구에선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됐죠. 다른 지역에서는 유권자의 95.5%가 투표에 참가해 198명의 의원을 뽑았습니다. 이들은 헌법을 만들어 7월 17일에 공포했고, 그 헌법에 따라 대한민국 대통령과 정부를 만들었죠. 8월 15일 수립된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군 병력을 더 보냅니다.
10월 11일, 제주도에 경비사령부를 설치하고 해안에서 5km 이상 들어간 중산간지대를 통행하는 자는 폭도로 간주해 총살하겠다는 포고문을 발표해요. 군경토벌대는 이때부터 마을에 불을 지르고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생하기 시작했습니다. 11월 17일에는 계엄령을 내렸죠. 중산간지대에 있는 마을들을 초토화시켰을 뿐 아니라 해안마을로 내려간 주민들까지 무장대에 협조했다며 무자비하게 살해했죠. 이에 무장대 등 산에 오른 사람들도 경찰 가족과 우익인사를 살해하고 식량을 약탈했습니다. 복수는 복수로, 증오는 충돌로 이어져 민간인들은 ‘산도 무섭고 군경도 무서운’ 상황에서 희생당했죠.
1949년 3월 “산에서 내려와 귀순하면 과거 행적을 묻지 않고 살려주겠다”는 선무공작이 전개됩니다. 한라산에 올랐던 약 1만 명이 내려왔지만 방침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1600여 명이 총살당하거나 형무소로 보내졌죠. 한국전쟁 때도 예비검속(죄를 저지를 개연성이 있는 사람을 처분하는 것)으로 희생이 이어졌고요. 한라산 금족지역은 1954년 9월 21일이 되어서야 전면 개방됐습니다.
4·3은 그 기간만큼이나 희생도 컸죠.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4·3위원회)가 확정한 희생자 수는 1만4233명(2017년 기준)이에요. 이는 공식적으로 집계된 희생자 수치로, 진상조사보고서에선 2만5000~3만 명으로 추정하죠.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은 겁니다. 또 가옥 4만여 채가 소실되었으며, 학교·면사무소 등 공공기관 건물과 각종 산업시설이 파괴되고, 중산간지역의 상당수 마을이 폐허로 변했죠.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된 후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간 주민도 있지만 집중피해를 입은 곳의 경우 돌아가지 않은 이들도 많아 버려진 마을도 남아있어요.
오랫동안 4·3은 잊혔습니다. 4·19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몰락하며 시작된 4·3 관련 논의는 5·16군사정변으로 중단, 이후 20여년간 금기시됐죠. 1987년 6월항쟁으로 민주화를 향한 열망이 거세지며 1989년 41주기 4·3추모제가 처음 공개적으로 열렸고, 제주4·3연구소가 창립됩니다. 199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4·3사건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김대중 후보는 대통령이 된 뒤 2000년 1월 4·3특별법에 서명해요. 4·3특별법은 제주 4·3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관련 희생자와 그 유족의 명예를 회복시켜줌으로써 인권신장과 민주발전 및 국민화합에 이바지하는 것이 목적이죠. 이후 진상규명, 희생자 유족 지원과 기념사업이 추진됐고 2003년 10월에는 2년여의 조사 끝에 진상조사보고서가 공식 확정됐어요. 보고서는 “정부는 이 불행한 사건을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가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희생자와 그 유족을 위로하고 적절한 명예회복 조치를 취할 것을 기대한다”고 마무리됐는데요. 보름 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를 방문해 공식 사과했습니다.
올해는 4·3사건 71주년이죠. 저는 가족과 함께 4·3평화기념관과 너븐숭이 4·3기념관. 북촌초등학교에 다녀왔어요. 제주시 봉개동에 있는 4·3평화기념관은 1~6관의 상설전시관과 다랑쉬 특별전시관으로 구성돼 4·3의 원인부터 진상규명 과정까지 살펴볼 수 있죠. 특히 1관에 있는 ‘백비’는 비문 없는 비석인데요. 4·3의 진정한 해결이 이루어지는 날, 비로소 비문이 새겨질 것이며 누워 있는 비석도 세워질 것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다랑쉬 특별전시관은 1948년 11명의 민간인이 토벌대에 의해 질식사한 동굴인 ‘다랑쉬굴’의 내부를 발굴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해 당시 긴박했던 피난생활과 학살 상황을 느낄 수 있었죠. 전시를 다 보고 나가는 통로에는 수많은 4·3희생자들의 사진이 있었는데 사진을 보니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4·3평화기념관 안내데스크에서 “동백꽃 배지 주세요” 하면 무료로 배지를 받을 수 있어요. 동백꽃은 4·3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꽃이죠. 기념관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4·3어린이체험관이 있어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4·3 이야기를 총 5개의 전시실에서 볼 수 있죠. 11세 이하 어린이라면 이곳을 추천합니다.
기념관이 자리한 4·3평화공원에는 위령탑도 세워져 있어요. 위령탑 주위를 둘러싼 명비에는 마을별로 희생자 약 1만5000명의 성별·연령·사망일시와 장소가 간결하게 기록됐죠. 이곳에서는 매년 4·3추념식이 열립니다. 지난해 제70주년 4·3추념식에는 저도 참석해 문재인 대통령의 추념사를 직접 들었죠.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취재진이 왔는데, 신문과 방송을 통해 4·3이 많이 알려져서 감사했습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제주시 조천읍에 있는 너븐숭이 4·3기념관이에요. 너븐숭이는 제주도 말로 ‘넓은 웅덩이’라는 뜻으로, 당시 300여 명의 주민이 학살된 곳입니다. 기념관 옆에는 한 살, 두 살, 네 살, 일곱 살의 나이에 희생된 아이들의 무덤이 있어요. 애기무덤을 보니 죄 없는 아이들까지 무자비하게 죽인 토벌대에게 매우 화가 났죠. 애기무덤 옆 돌탑에는 희생된 아이들을 추모하는 인형과 꽃, 간식 등이 놓여있었어요.
너븐숭이 기념관 근처에는 북촌초등학교가 있습니다. 당시 가장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던 곳이죠. 1949년 1월 17일 북촌사건으로 군 토벌대에 의해 주민 350여 명이 희생당했습니다. 이로 인해 폐교하기도 했지만 현재는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외부 사람들이 관람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제가 초등학생이라 상징적인 느낌으로 들러봤죠.
4·3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소중 친구들에게 초·중생이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할게요. 장란희 작가의 『무명천 할머니』, 권윤덕 작가의 『나무도장』, 신여랑·오경임·현택훈 작가의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제주 4.3은 왜?』, 영화로도 만들어진 오멸 작가의 『지슬』입니다. 저도 다 읽어봤는데요, 특히 처음 읽었던 『나무도장』이 기억에 남습니다.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책이고, 2015년 열렸던 권윤덕 작가 북콘서트에 가서 강의도 들었죠.
한국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극심했던 사건으로 꼽히는 4·3. 소년중앙 독자들도 제주도를 여행하게 된다면 4.3유적지를 꼭 방문했으면 좋겠어요. 또, 4·3을 우리 역사로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정가희(제주 아라초 6) 학생기자·김현정 기자 [email protected], 사진=정가희 학생기자·중앙포토, 자료=제주4·3평화재단·제주4·3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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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띠]
앞뒤를 잘 가려야 성공할 수 있다.
1948년생, 소송은 불길하다. 타협하라.
1960년생, 주위 상황을 주시하고 보조를 맞추자.
1972년생, 파트너와 불화 있겠다. 신중히 결정하라.
1972년생,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다. 서쪽이 길한 방향이다.
[소띠]
마음을 바르게 쓰면 큰 복을 받을 수 있다.
1949년생, 산야에 봄이 돌아오니 그 빛이 새롭다.
1961년생, 바른 자세로 일을 꾀하면 집안에 재물이 쌓일 것이다.
1973년생,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일을 차장 취하면 성공한다.
1985년생, 머무르지 말고 과감히 나아가라.
[범띠]
발전일로에 들어섰다. 윗사람의 자문을 받아 실행하라.
1950년생, 생각지 않던 곳에서 희망이 생기고 활기를 찾게 된다.
1962년생, 독단하지 말고 가족과 상의하라.
1974년생, 출세나 진급수가 보인다.
1986년생, 사고로 인해 골절 등을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
[토끼띠]
특이한 지혜와 재치로 만인의 사랑을 받게 된다.
1951년생, 상대의 변덕이 심해 앞을 내다보기가 힘들구나.
1963년생, 흑백을 가리기는 힘들다. 작당한 선에서 타협하라.
1975년생, 일복이 많아 건강을 잃을 수 있으니 쉬었다 가라.
1987년생, 하늘이 나를 돕는다. 무조건 밀고 나아가라.
[용띠]
모든 일에는 이치가 있는 법. 순리에 역행하지 말라.
1952년생,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 순탄히 성사된다.
1964년생, 정신은 풍요한데 물질은 빈곤하구나.
1976년생, 동북방에 귀인과 제물이 있다.
1988년생, 실패를 두려워마라.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뱀띠]
뜻을 이루려 하는데 누군가 음해하려 하는구나. 주의하라.
1953년생, 운대가 좋지 못하구나.
1965년생, 계약이나 매매는 다음 날로 미루어라.
1977년생, 시험의 합격이나 취직은 아직 이르다. 먼저 마음의 평안을 찾자.
1989년생, 지금으로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말띠]
의기소침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도전하라.
1954년생, 바라는 바가 너무 크다. 인생사 욕심낸들 무슨 소용인가?
1966년생, 스스로를 위로하라.
1978년생, 상대가 먼저 화해를 요청하는구나. 받아들이라.
1990년생, 연인이나 부부사이의 다툼은 금물, 서로 조금씩 양보하라.
[양띠]
동료나 친구를 믿고 의지하라. 힘을 받는다.
1955년생, 계획을 먼저 하라. 무작정 벌린다고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1967년생, 시기적으로 거래를 성사시키기는 어렵다.
1979년생, 주의 사람과 상의하여 함께 도모해야 한다.
1991년생, 사기를 당하거나 속을 수 있으니 오늘 하루 조심하라.
[원숭이띠]
안일한 행동은 삼가라. 주색을 조심할 때
1956년생, 고집부리지 말고 주위를 돌아봐라.
1968년생, 조금 잘 풀린다고 방탕하면 쓰겠는가? 자중하라.
1980년생, 미래가 불투명하고 마음이 답답하니 위태롭다.
1992년생, 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작은 것은 이루겠다.
[닭띠]
세상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인가? 나 자신을 추스르자.
1957년생, 자식 중에 효자가 나겠구나.
1969년생, 고민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 가까운 사람과 상의하라.
1981년생, 조금만 인내하면 좋은 결과 있겠다.
1993년생, 자존심에 얽매여 기회를 놓치지 말라.
[개띠]
귀인이 앞을 다투어 도와주는구나. 뜻밖의 성공을 거두리라.
1958년생, 상대를 쉽게 생각하지 말라. 상대도 나만큼 알고 있다.
1970년생, 특별한 어려움 없이 원하는 바를 이루리라.
1982년생, 실망이 크겠으나 참고 인내하라. 결실이 배가 되리라.
1994년생, 시간이 없다고 서두르지 말라.
[돼지띠]
움직일수록 이익이 생기는 하루이다.
1959년생, 좋은 기운의 하루이다. 뜻을 펼쳐라.
1971년생, 크게 일어나게 된다. 가만히 있지 말고 움직여라.
1983년생, 찾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 눈에 보이지 않는구나. 안정하라.
1995년생,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나가니 주위 사람들이 따르는구나.
제공=드림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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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띠]
앞뒤를 잘 가려야 성공할 수 있다.
1948년생, 소송은 불길하다. 타협하라.
1960년생, 주위 상황을 주시하고 보조를 맞추자.
1972년생, 파트너와 불화 있겠다. 신중히 결정하라.
1972년생,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다. 서쪽이 길한 방향이다.
[소띠]
마음을 바르게 쓰면 큰 복을 받을 수 있다.
1949년생, 산야에 봄이 돌아오니 그 빛이 새롭다.
1961년생, 바른 자세로 일을 꾀하면 집안에 재물이 쌓일 것이다.
1973년생, 방향을 바꾸어 새로운 일을 차장 취하면 성공한다.
1985년생, 머무르지 말고 과감히 나아가라.
[범띠]
발전일로에 들어섰다. 윗사람의 자문을 받아 실행하라.
1950년생, 생각지 않던 곳에서 희망이 생기고 활기를 찾게 된다.
1962년생, 독단하지 말고 가족과 상의하라.
1974년생, 출세나 진급수가 보인다.
1986년생, 사고로 인해 골절 등을 당할 수 있으니 주의하라.
[토끼띠]
특이한 지혜와 재치로 만인의 사랑을 받게 된다.
1951년생, 상대의 변덕이 심해 앞을 내다보기가 힘들구나.
1963년생, 흑백을 가리기는 힘들다. 작당한 선에서 타협하라.
1975년생, 일복이 많아 건강을 잃을 수 있으니 쉬었다 가라.
1987년생, 하늘이 나를 돕는다. 무조건 밀고 나아가라.
[용띠]
모든 일에는 이치가 있는 법. 순리에 역행하지 말라.
1952년생,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 순탄히 성사된다.
1964년생, 정신은 풍요한데 물질은 빈곤하구나.
1976년생, 동북방에 귀인과 제물이 있다.
1988년생, 실패를 두려워마라.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
[뱀띠]
뜻을 이루려 하는데 누군가 음해하려 하는구나. 주의하라.
1953년생, 운대가 좋지 못하구나.
1965년생, 계약이나 매매는 다음 날로 미루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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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생, 지금으로선 기다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말띠]
의기소침하지 말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어 도전하라.
1954년생, 바라는 바가 너무 크다. 인생사 욕심낸들 무슨 소용인가?
1966년생, 스스로를 위로하라.
1978년생, 상대가 먼저 화해를 요청하는구나. 받아들이라.
1990년생, 연인이나 부부사이의 다툼은 금물, 서로 조금씩 양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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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생, 계획을 먼저 하라. 무작정 벌린다고 성공할 수 없는 법이다.
1967년생, 시기적으로 거래를 성사시키기는 어렵다.
1979년생, 주의 사람과 상의하여 함께 도모해야 한다.
1991년생, 사기를 당하거나 속을 수 있으니 오늘 하루 조심하라.
[원숭이띠]
안일한 행동은 삼가라. 주색을 조심할 때
1956년생, 고집부리지 말고 주위를 돌아봐라.
1968년생, 조금 잘 풀린다고 방탕하면 쓰겠는가? 자중하라.
1980년생, 미래가 불투명하고 마음이 답답하니 위태롭다.
1992년생, 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작은 것은 이루겠다.
[닭띠]
세상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인가? 나 자신을 추스르자.
1957년생, 자식 중에 효자가 나겠구나.
1969년생, 고민을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마라. 가까운 사람과 상의하라.
1981년생, 조금만 인내하면 좋은 결과 있겠다.
1993년생, 자존심에 얽매여 기회를 놓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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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생, 상대를 쉽게 생각하지 말라. 상대도 나만큼 알고 있다.
1970년생, 특별한 어려움 없이 원하는 바를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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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사이트 신고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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