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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의 클래식>나지막한 피아노 선율로 휴식 선사…현대인을 위한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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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상경 작성일20-08-27 17:3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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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막스 리히터

몽환적 전자음·보컬과 조화

자연스레 깊은 잠으로 인도

8시간 24분에 달하는 대작


운전 습관은 보통 그 사람의 성격과는 정반대인 경우가 많다고들 한다. 필자의 경우를 보면 일리가 있는 이야기인 것 같다. 까다롭고 예민한 성격과는 다르게 운전대를 잡으면 꽤 순하고 무던해진다. 새치기하는 얄미운 차들에도, 오도 가도 못 하는 꽉 막힌 도로에서도 여간해서는 화가 나거나 짜증이 일지 않는다. 그저 느긋하게 클래식 FM에 주파수를 맞추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마음으로 좋아할 만한 음악을 찾아 나서면 그만이다.

얼마 전 그렇게 우연히 만나게 된 음악에 마음과 귀를 홀딱 빼앗겼다. 마침 클래식 FM에서는 현대음악 풍으로 작곡한 국악 밴드의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연주가 끝나고 이어지는 디제이의 곡 소개 멘트, 국악 밴드 ‘잠비나이’의 ‘감긴 눈 위로 비추는 불빛’이라는 곡이었다.

곡명을 듣는 순간 무척이나 반가웠다. 어쩌면 곡을 들으며 떠올렸던 어린 시절 추억어린 감상과 꼭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에너지가 넘치고 매일 나만의 공상이 가득했던 초등학교 시절엔 이부자리에 누워도 금세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시절 필자에게는 가만히 누워서 하는 ‘잠을 청하기 위한’ 소리 없는 놀이가 있었다. 바로 ‘감긴 눈 위로’ 환영을 만드는 것이었다. 놀이의 요령은 눈이 아플 만큼 몇 초간 힘주어 꾹 감고 있다가 눈이 떠지지 않을 만큼만 서서히 힘을 푸는 것이었다. 마치 카메라의 조리개를 조절하듯 이를 반복하다 보면 내가 원하는 만화 주인공의 얼굴이나 마징가 로봇 같은 환영을 스틸 컷처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힘들게 만들어 낸 이미지들은 아무리 온 정신을 집중해도 금세 다른 공상이 새어 들어와 길게 붙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전혀 지루하지도 안타깝지도 않았다.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는 잠자리를 쫓는 것처럼 이리저리 헤매다 보면 어느새 달콤한 잠에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어른이 돼서도 그 시절과 같은, 또 다른 이유로 잠을 쉽게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과 괴로움은 더 길고 커졌다. 이때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이 불안이나 우울감을 덜어주고 나를 편안한 잠으로 인도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1700년대에 이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불면증에 시달리던 헤르만 카를 폰 카이저링크 백작을 위해 작곡한 ‘골드베르크 변주곡’(Goldberg Variations)이 있다. 하지만 2015년 현대음악의 거장인 독일 출신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는 정신없이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을 위한 자장가’라는 콘셉트로 새로운 처방의 자장가를 내놓았다.

현대인을 위한 자장가 ‘슬립’은 나지막한 피아노의 선율로 시작해 전자음의 몽환적인 음형과 가사 없는 여성 보컬과 함께 편안한 휴식으로 깊은 잠으로 인도한다. 불안과 걱정을 잠시 묻어 두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하는 마음으로 ‘슬립’과 함께 잠을 청해 보시길 권한다. 그리고 음악의 끝과 함께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렸을 땐 불안과 걱정, 그리고 전 세계를 뒤덮고 있는 바이러스로 인한 공포마저도 잠잠해지길 바란다.

안우성 남자의 클래식 저자

오늘의 추천곡 : 막스 리히터 ‘슬립’

잠자리에 들기 위해 준비하는 순간부터 깊은 잠을 지나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리기까지의 모든 수면 과정을 산정한 이 작품은 그 길이가 무려 8시간 24분에 달한다. 잠을 자는 것은 의식과도 같은 신성한 행위이고 인간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행위라고 말하는 작곡가 막스 리히터는 작곡에 앞서 신경과학자인 데이비드 이글먼을 찾아간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잠의 메커니즘과 그에 음악이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를 마친 후에야 작곡에 들어갔다. 이 작품은 단순한 감상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과의 접목이자 실험 예술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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