옵티머스 사태 보상안 마련 못한 정영채 NH증권 사장…투자자들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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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선지
작성일20-08-07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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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 사태 투자자들은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과의 면담에서 뚜렷한 대책이나 보상안을 얻지 못했다며 NH증권을 향해 본격적인 법적절차를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더팩트 DB
"비대위 중심으로 단체 소송 나설 것"
[더팩트ㅣ박경현 기자]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 사태(옵티머스 사태) 보상을 둘러싸고 판매사인 NH투자증권과 투자원금 손실 위기에 처한 투자자간 팽팽한 접전이 지속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과의 면담에서도 뚜렷한 대책이나 보상안을 얻지 못했다며 NH증권을 향해 본격적인 법적절차를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옵티머스 펀드사기 피해자모임'의 비상대책위원들은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본사에서 정영채 사장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는 비공개로 진행돼 취재진 대상 경비가 평소보다 엄격하게 이뤄졌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간담회 내용과 관련해 알려줄 수 없으며 카메라 촬영 등 취재가 불가하다"고 했다.
비대위원들은 간담회에서 유동성 지원방안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한국투자증권 이상의 지원(원금의 70% 보상)을 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 사장과의 면담에서조차 NH증권 측이 뚜렷한 보상안을 내놓지 않은 채 계속해 답보상태를 유지했다는 설명이다.
비대위원 측은 "유동성이 급한 피해자들에 대한 선구제방안에 대해 간담회 내내 질의했지만 정 사장으로부터 지급률 및 지급시기를 비롯해 명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간담회 내용과 관련해 알려줄 수 없으며 카메라 등 취재가 불가하다"고 전했다. /박경현 기자
정 사장은 오는 27일 열릴 임시이사회를 통해 피해자 유동성 공급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정 사장은 "선지급 비율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결정에 따라 검토가 필요하다"고 비대위원 측에 전했다.
또한 정 사장은 판매사인 NH투자증권 외에 수탁사인 하나은행과 사무수탁사인 예탁결제원 등에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사장은 "금감원 조사 등에서 수탁사 및 예탁원 등의 과실이 발견되었으며 높은 유동성 공급비율 확보를 위해서 이들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아울러 "NH투자증권에 100%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최종적인 것은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대위 관계자는 "매출채권 존재에 대한 진위여부 검증이 전무한 것에 대해 책임을 추궁했으나 NH증권 측이 자본시장법상 판매사로서 운영사의 운영에 관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반복했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투자자들은 비대위를 중심으로 한 단체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투자자는 "어떻게든 이겨서 우리의 권리를 찾을 것"이라며 "금감원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소송준비에 나서겠다"라고 말했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보상안에 대한 향후 계획에 대해 "8월 27일이 매달 정기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임시이사회 개최일이나, 이전에 해법이 나올 경우 27일 이전에 임시이사회를 소집해 안건을 상정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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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티머스 사태 투자자들은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과의 면담에서 뚜렷한 대책이나 보상안을 얻지 못했다며 NH증권을 향해 본격적인 법적절차를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사진은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이사. /더팩트 DB"비대위 중심으로 단체 소송 나설 것"
[더팩트ㅣ박경현 기자]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환매중단 사태(옵티머스 사태) 보상을 둘러싸고 판매사인 NH투자증권과 투자원금 손실 위기에 처한 투자자간 팽팽한 접전이 지속되고 있다. 투자자들은 정영채 NH투자증권 사장과의 면담에서도 뚜렷한 대책이나 보상안을 얻지 못했다며 NH증권을 향해 본격적인 법적절차를 준비한다는 방침이다.
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전날 '옵티머스 펀드사기 피해자모임'의 비상대책위원들은 서울 여의도 NH투자증권 본사에서 정영채 사장과의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간담회는 비공개로 진행돼 취재진 대상 경비가 평소보다 엄격하게 이뤄졌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간담회 내용과 관련해 알려줄 수 없으며 카메라 촬영 등 취재가 불가하다"고 했다.
비대위원들은 간담회에서 유동성 지원방안과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한국투자증권 이상의 지원(원금의 70% 보상)을 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정 사장과의 면담에서조차 NH증권 측이 뚜렷한 보상안을 내놓지 않은 채 계속해 답보상태를 유지했다는 설명이다.
비대위원 측은 "유동성이 급한 피해자들에 대한 선구제방안에 대해 간담회 내내 질의했지만 정 사장으로부터 지급률 및 지급시기를 비롯해 명확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간담회 내용과 관련해 알려줄 수 없으며 카메라 등 취재가 불가하다"고 전했다. /박경현 기자정 사장은 오는 27일 열릴 임시이사회를 통해 피해자 유동성 공급방안을 결정할 예정이다. 정 사장은 "선지급 비율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결정에 따라 검토가 필요하다"고 비대위원 측에 전했다.
또한 정 사장은 판매사인 NH투자증권 외에 수탁사인 하나은행과 사무수탁사인 예탁결제원 등에도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 사장은 "금감원 조사 등에서 수탁사 및 예탁원 등의 과실이 발견되었으며 높은 유동성 공급비율 확보를 위해서 이들에게도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아울러 "NH투자증권에 100%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기 어려워 최종적인 것은 법원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대위 관계자는 "매출채권 존재에 대한 진위여부 검증이 전무한 것에 대해 책임을 추궁했으나 NH증권 측이 자본시장법상 판매사로서 운영사의 운영에 관여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반복했다"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투자자들은 비대위를 중심으로 한 단체소송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한 투자자는 "어떻게든 이겨서 우리의 권리를 찾을 것"이라며 "금감원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면서 소송준비에 나서겠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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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오래 전 ‘이날’]망각 더듬는 이승만 박사의 하와이 생활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김구 임시정부 주석(왼쪽에서 두 번째), 지청천 장군(왼쪽에서 세번째), 이승만 박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후란체스카 여사(오른쪽). 경향신문 자료사진.
6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망각 더듬는 이박사 생활’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4·19 혁명에 의해 축출된 전 대통령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에는 ‘하와이어 돌아오지 않을 모양’, ‘푸 여사도 강아지 잊어버린 듯’ 등의 부제목이 달렸습니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박사에게 해안별장을 제공한 월버트 최씨 부처는 이박사 부처가 친구들과 고요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며 이젠 다시 고국에 돌아갈 의사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하와이에 왔을 당시 “어떻게 해서든지 돌아갈 생각이에요. 귀여운 강아지 세 마리가 기자리고 있는걸요”라고 말한 푸란체스카 부인도 이 늙은 내외를 따뜻한 ‘아로와’의 마음씨로 맞아준 하와이에서 여생을 마치기로 마음잡은 모양이다. 허나 이박사를 맞이한 교포사회는 복잡미묘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인구로 쳐서 팔천에 불과한 교포사회건만 친과 반 두 파로 갈라져 있다.
사진=이박사 부처가 한거하는 월버트 최씨의 별장, 이 부근은 양어장을 매몰한 곳. 주위에는 수초가 우거졌고 집이라고는 이 별장을 합하여 세 채밖에 없다. 맑은 여울이어서 어린이들이 게잡이를 위해서 모여든다. 원내는 망명하는 비행기 안에서 찍은 이박사의 표정.
1960년 8월 6일 경향신문.
12년 간 장기집권했던 독재자 이승만은 1960년 3·15 부정선거 이후 4·19혁명이 일어나자 하야했고, 같은해 5월 29일에는 김포공항을 통해 비밀리에 하와이로 망명했습니다. 60년 전 오늘 경향신문의 기사는 그렇게 도망치듯 하와이로 떠난 독재자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였던 것입니다. 참고로 경향신문은 이승만이 김포공항을 통해 망명했다는 사실을 단독 취재해 그날 특종으로 보도한 바 있습니다. 하와이에서 말년을 보내던 이승만은 1965년 7월 1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유해는 많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립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부부의 하와이 망명 사실을 특종 보도한 1960년 5월29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사망한 지 55년이 지난 최근 이승만의 이름이 여러 언론 보도에 다시 등장한 것은 뜬금없는 ‘국부’와 ‘건국 대통령’ 논란 때문이었습니다. 지난달 23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이 후보자의 ‘사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대착오적인 질문들을 한 것입니다. 미래통합당 박진 의원은 전대협 문건에 있는 ‘이승만 정권은 괴뢰정권’ 표현을 근거로 이 후보자에게 이승만에 대한 평가를 물었고, 이 후보자는 “국부는 김구 주석이 되는 게 더 마땅하다고 본다”고 답했습니다. 이 후보자는 “이승만 대통령이 국부라는 주장에는 솔직히 동의하기 어렵다”면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이 같은 시대착오적인 논란은 지난달 19일 이승만 사망 55주기 추모식에서 국가보훈처장이 한 추모사에 대해 일부 언론이 비판 보도를 하면서 촉발되기도 했습니다. 박삼득 국가보훈처장이 추모사를 낭독하면서 이씨를 ‘이승만 박사’라고 호칭했는데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이 이승만을 폄훼한 것이라고 보도한 것입니다. 박 처장은 지난달 28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의 이승만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거나 다른 어떠한 의도가 전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과거에 ‘이 박사’, ‘이 박사님’이란 호칭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별 구분 없이 생각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박 처장은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 건국 대통령으로 인정하는가’라는 미래통합당 강민국 의원의 질의에는 “초대 대통령이라는 말씀에는 동의한다”고 답했습니다. 그는 강 의원의 “건국 대통령으로는 인정하지 못하나”라는 질의에는 “그 부분은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개인이 아니라 보훈처장으로서 정책을 수행해나감에 있어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즉답을 피했습니다.
이승만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인 동시에 독재자였고, 부정선거와 많은 시민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주 4·3과 6·25 당시의 양민 학살은 물론 4·19 혁명 당시 독재에 항거하다가 사망한 이들에 대한 책임만으로도 이승만을 국부나 건국 대통령으로 선뜻 인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4·19 당시 이승만 정부는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발포하면서 186명의 시민을 살해한 바 있습니다.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없지만 과오가 너무나 크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2015년 8월 경북대 이정우 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했던 ‘[시대의 창]광복은 언제 오려나’라는 글 가운데 이승만의 과오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발췌해 봅니다.
요새 광복보다 건국을 중시하면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모시자고 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 이승만은 역사를 왜곡시킨 치명적 잘못을 저질렀다. 이승만의 과오 세 가지를 들자면 첫째, 권력 장악에 눈이 멀어 남북 분단을 조장한 죄, 둘째,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국내 권력 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 친일파를 살려주고 중용한 죄, 셋째, 왕처럼 군림하며 독재한 죄. 민족 반역자들이 처벌받기는커녕 요직을 독차지함으로써 신생 독립국 한국에서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했다. 광복인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흑백이 뒤바뀌고 사회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김기범 기자 [email protected]
▶ 장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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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임시정부 주석(왼쪽에서 두 번째), 지청천 장군(왼쪽에서 세번째), 이승만 박사(오른쪽에서 두 번째), 후란체스카 여사(오른쪽). 경향신문 자료사진.6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에는 ‘망각 더듬는 이박사 생활’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4·19 혁명에 의해 축출된 전 대통령 이승만이 하와이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에는 ‘하와이어 돌아오지 않을 모양’, ‘푸 여사도 강아지 잊어버린 듯’ 등의 부제목이 달렸습니다.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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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없지만 과오가 너무나 크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것입니다. 2015년 8월 경북대 이정우 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했던 ‘[시대의 창]광복은 언제 오려나’라는 글 가운데 이승만의 과오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발췌해 봅니다.
요새 광복보다 건국을 중시하면서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모시자고 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 있다. 이승만은 역사를 왜곡시킨 치명적 잘못을 저질렀다. 이승만의 과오 세 가지를 들자면 첫째, 권력 장악에 눈이 멀어 남북 분단을 조장한 죄, 둘째, 존재하지 않는 자신의 국내 권력 기반을 만들어내기 위해 친일파를 살려주고 중용한 죄, 셋째, 왕처럼 군림하며 독재한 죄. 민족 반역자들이 처벌받기는커녕 요직을 독차지함으로써 신생 독립국 한국에서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했다. 광복인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흑백이 뒤바뀌고 사회정의가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김기범 기자 [email protected]
▶ 장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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